1990년대 13

초대 더트왕 신코 윈디, 새로운 시대의 시작 1

일본의 경마는 오랫동안 잔디 위주의 레이스 체계로 자리잡은 중앙 경마의 인기가 많아 팬들의 관심이 더트보다 잔디로 쏠렸다.그러나 당시 세계 경마의 흐름은 달랐다.당시 세계 경마의 주도권이 잔디의 총본산인 유럽에서 더트의 초강대국인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1996년 창설된 두바이 월드컵도 세계 최강마 결정전을 목표로 내걸었지만유럽이 가장 선호하는 잔디 2400m가 아닌 더트 2000m로 창설하며 세계 경마의 흐름이 변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JRA는 더트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중앙을 뒷받침해주는 지방 경마의 경마장 대부분이 더트 코스를 택하기도 했고, 당시 해외의 흐름을 따라가고자 일본 경마도 1990년대에 들어 더트 전선을 개편&재정비하기로 정했다. 그렇게 1997년, 페브러리S의 G1 승격을..

위닝 티켓, 승리의 티켓을 너에게! 4

그리고 돌아온 10월 17일 킷카상의 트라이얼인 교토 2200m 교토신문배(G2)에서 시동을 걸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D42H6w5cik 1번 인기였던 4번 위닝 티켓은 최종직선으로 넘어가는 순간 안을 파고들어 뒷심을 발휘해 2착과 목 차로 1착을 거두었다. 중상 3승에 2연승 달성! 그리고 클래식 3관의 마지막 관문 11월 7일 교토 3000m 킷카상(G1) 1번 인기는 전초전인 고베신문배(G2)를 승리하여 9경기 연속 연대율 100%이던 비와 하야히데 2번 인기는 마찬가지로 전초전인 교토신문배(G2)에서 승리한 더비마 위닝 티켓 3번 인기는 타카마츠노미야배(G2)에서 2착을 기록한 사츠키마 나리타 타이신 https://www.youtube.com/watch?..

위닝 티켓, 승리의 티켓을 너에게! 3

BNW가 다시 모였다. 1993년 5월 30일 도쿄 경마장에서의 2400m 일본 더비(G1) 날씨는 좀 흐렸으나 잔디 상태는 좋았다. 1번 인기는 사츠키상 4착 10번 위닝 티켓 2번 인기는 사츠키 2착으로 여전히 연대율 100%인 7번 비와 하야히데 3번 인기는 사츠키상 우승마 1번 나리타 타이신 사람들은 그래도 야요이상 때의 그 달리기를 기대했던 걸까 사츠키상 4착이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이었음에도 위닝 티켓은 다시 1번 인기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 경기에도 사츠키상 때와 같은 기수가 기승했다. 비와 하야히데의 안장엔 [명수] 오카베 유키오 나리타 타이신의 위엔 [천재] 타케 유타카 그리고 위닝 티켓엔 [집념] 시바타 마사토 명마들과 명기수들이 일본 더비에 다시 모였다. 그리고 오후 3시 30..

세기말패왕(世紀末覇王) 티엠 오페라 오, 막이 오르다 6

일본더비 패배 이후 오페라는 가바리 공동 육성 센터에서 방목에 들어갔다. 역시 상당한 피폐가 있었지만 목장의 세심한 관리로 오페라는 점점 생기를 되찾았다. 이 해는 홋카이도도 무더위를 겪었지만 오페라가 있는 곳은 비교적 나았고, 덕분에 9월에 릿토 트레센으로 오페라를 운반할 수 있었다. 오페라의 선택지는 2곳이 있었다. 우선 하나는 10월 17일에 열리는 왕도인 국화상의 트라이얼 교토신문배 아마 오페라 오가 아닌 다른 말이었다면 당연히 이곳으로 정했을 것이다. 거기다 이 교토 신문배에 라이벌인 어드마이어 베가와 나리타 탑 로드도 출주한다고 밝혔다. 다만 문제는 오페라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소식(小食)을 하고 있었다. 여름 방목 때 이 부분이 괜찮아지길 바랬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

세기말패왕(世紀末覇王) 티엠 오페라 오, 막이 오르다 5

‘오페라 오가 가장 강하다’ 이와모토 조교사와 와다 기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와다 기수와 이와모토 조교사가 자만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페라의 능력 자체는 과신이라 부를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도쿄 경마장에 대한 실적은 물론이고 경험도 부족했지만 (더비 이전까지 각각 교토에 3번, 한신 2번, 나카야마에 1번 출주함) 어느 위치에 서있던 골인지점까지 말각을 다 쓸 수 있는 오페라만큼 믿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찾아온 1999년 6월 6일 도쿄 2400m 제66회 일본더비 1번 인기는 사츠키상 3착마 11번 나리타 탑 로드 2번 인기는 충격의 사츠키상 6착을 기록했던 2번 어드마이어 베가 3번 인기는 사츠키상마 14번 티엠 오페라 오 당시 사람들은 ‘오페라가 이..

위닝 티켓, 승리의 티켓을 너에게! 2

1993년 3월 7일 나카야마 2000m 야요이상(G2) 1번 인기는 3연승 중인 10번 위닝 티켓 2번 인기는 라디오 단파배 3세S(G3) 1착, 신잔기념(G3) 2착을 거두고 기수가 타케 유타카로 변경된 9번 나리타 타이신 https://www.youtube.com/watch?v=2O6pgckTDkw 3코너에서 4코너로 넘어가는 순간 뒤에서 위닝 티켓과 나리타 타이신이 가속! 승자는 2마신차로 위닝 티켓이 승리! 그것도 2분 0.1초로 작년 아사카 리젠트가 세운 2분 0.4초를 무려 0.3초나 단축시킨 레코드에 1984년 심볼리 루돌프의 사츠키상 2분 1.1초 기록을 무려 1초나 웃도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위닝 티켓은 이로써 4연승을 거두며 사츠키상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4월 18일 나카야마 20..

세기말패왕(世紀末覇王) 티엠 오페라 오, 막이 오르다 4

시간이 흘러 1999년 4월 18일 나카야마 2000m 날씨는 비가 오고 있었다. 1번 인기는 선데이 사일런스와 ‘서쪽의 일등성’ 베가의 배합으로 라디오 단파배 3세S(G3)를 우승한 타케 유타카의 어드마이어 베가(2번) 2번 인기는 그런 어드마이어 베가에 맞서 싸워 야요이상(G2)을 우승한 와타나베의 나리타 탑 로드(8번) 3번 인기는 삿포로 3세S(G3)와 와카바S(OP)를 승리하며 2연승을 달리고 있는 18번 마이넬 플래티넘 12번 티엠 오페라 오는 5번 인기였다. 당시 사람들은 어드마이어 베가와 나리타 탑 로드의 2강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SS+베가 배합의 양혈마 어드마이어 베가냐 아니면 그런 아야베를 한 번 꺾어본 탑 로드냐 그리고 한 마리가 게이트에서 난동을 일으켜 부상을 당해 한 마리가 빠..

세기말패왕(世紀末覇王) 티엠 오페라 오, 막이 오르다 3

그리고 오페라 진영은 다음을 레이스를 500만엔 이하 조건전인 유키야나기상으로 정했다. 한신 2000m, 오랜만에 잔디로 돌아왔다. 1999년 2월 27일 오페라는 오랜만에 잔디에서 뛰어서 그런지 약간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애초에 강했기 때문에 3/4마신차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 오페라 오의 다음 진영은 마이니치배(G3) 마이니치배는 사츠키상의 트라이얼은 아니지만 보통 여기에 출마하는 말들은 사츠키상에 출주하기 위해 상금을 얻는 목적으로 내보낸다. 원래 마주인 타케조노와 이와모토 조교사는 신마전 때 골절을 당한 후 오페라 오를 사츠키상에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하고 사츠키상 등록도 하지 않았다. 일정상 무리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사츠키가 아닌 더비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이니치배에서 ..

위닝 티켓, 승리의 티켓을 너에게! 1

1981년 후지와라 목장에서 한 암말이 태어났다. 파워풀 레이디 부마는 마루젠스키 외조부는 토쇼 보이, 테스코 가비, 사쿠라 유타카 오 등을 배출한 테스코 보이에 외조모는 오크스, 아리마 기념 등을 우승한 스타 로치라는 엄청 좋은 혈통을 받아 태어났다. 암말이다 보니 경주마로는 뛰지 않고 대신 번식 암말로 바로 활동하게 되는데 1984년엔 외산마 카준, 1985년, 86년엔 카츠라기 에이스 등 88년까지 5번 교배해 모두 새끼를 낳았으나 다리가 구부러져있다던지, 꼬리가 없다던지 하는 기형인 말들이 계속 태어났다. 후지와라 목장 측은 ‘파워풀 레이디라는 것은 굉장히 몸이 부드러운 말인데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마체의 씨앗을 붙이면 이제 (새끼가) 물러진다.’고 판단해 1989년, 6번째는 1988년 개선문상을..

세기말패왕(世紀末覇王) 티엠 오페라 오, 막이 오르다 2

마주 타케조노와 이와모토 조교사는 소꿉친구였다. 그 둘은 같이 1982년 일본 더비를 보고 난 후 꿈을 경마 쪽으로 정했었다. 오페라 오를 보러 갔을 때 같이 간 조교사 역시 이와모토였다. 그리고 타케조노는 오페라를 이와모토에게 맡겼다. 이와모토 마구간엔 여러 신인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신인 구무원 하라구치 마사야는 오페라를 처음 마구간에 맞이했을 때 ‘마체를 만져봐도 그 말만의 특별한 느낌을 모르겠다.’였다. 다만 날뛰지도 않고 사람 말을 잘 들어 다루기 쉬운 말이었다고 했다. 이와모토 조교사는 가바리 공동 육성센터(賀張共同育成センター)와 제휴를 맺고 말들을 육성했는데, 그 센터의 대표인 마키모토 카즈오도 다른 사람들처럼 마체의 균형이 좋지만 처음에는 중에서 살짝 위 정도로 평가했다. 그리고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