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 걸리버 5

스즈 퍼레이드, 황제의 그림자를 넘어라 7

스즈 퍼레이드는 또 다리 부상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 천황상(가을)과 재팬컵을 건너뛰고 작년에 좋은 기억을 만들었던 더비 경 CT(G3) 2연패를 노리기로 했다. 1986년 11월 30일 나카야마 1600m인 더비 경 CT(G3) 1번 인기는 중상 2승에 엘리자베스 여왕배를 4착으로 들어온 3세 암말 다이나 페어리(4.3배) 2번 인기는 천황상(가을)에서 6착으로 들어온 4세마 다이아몬드 런(4.9배) 그리고 5세의 스즈 퍼레이드는 3번 인기였다.(6.7배) 스즈 퍼레이드는 부담 중량이 무려 60kg으로 다른 13두보다 평균 6kg 정도 더 무거웠다. 거기다 마이니치 왕관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3번 인기라는, 다소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선행책으로 버티던 스즈 퍼레이드가 코너에서 순위..

다이나 걸리버, 샤다이의 꿈을 이루다 4

5세 때 다이나 걸리버 진영은 천황상(봄)-개선문상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1987년 4월 5일, 전초전인 닛케이상(G2)에 출주했다. 이 경기에는 미호 신잔, 레전드 테이오, 메지로 보아르 등 아리마에서 만났던 상대가 제법 보였다. 역시 신마의 아들이었던 걸까. 다이나 걸리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선행으로 끝까지 버티는 전략을 썼지만 뒤에서 쫓아오는 미호 신잔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미호 신잔이 2착 주사브로와 무려 5마신차로 압승을 거두었다. 다이나 걸리버는 3착. 그래도 아직 천황상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천황상 전에 골절을 당해 봄에는 천황상, 가을에는 개선문상을 노려보겠다는 계획은 무너져버리고만다. 그리고 골절로 인한 약 반 년간의 휴양 후 가을의 복귀전은 1987년 10월 11일 도쿄 ..

다이나 걸리버, 샤다이의 꿈을 이루다 3

여름을 지나 가을 다이나 걸리버의 가을 초전은 9월 28일의 세인트 라이트 기념(당시 G3)이었다. 인기는 역시 1번 인기 그러나 도망치는 레전드 테이오를 쫓지 못한 채 4착으로 더비마로서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약 3주 뒤인 10월 19일 교토신문배(G2), 2번 인기였으나 결과는 또 4착. 무려 사츠키상 13착, 더비 18착을 했던 타케노코마요시가 1착을 차지한 것이다. 「다이나 걸리버는 우방향 경기에서는 잘 달리지 못한다」 「다이나 걸리버는 더비에서 이미 모든 힘을 다 쏟았다」 경마 관계자들에게 다이나 걸리버는 이제 끝이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2경기였다. 그리고 찾아온 킷카상(G1) 1번 인기는 타카마츠노미야배(G2)에 우승했으나 교토신문배에서는 5착을 차지한 11번 럭비 볼 2번 인기는..

다이나 걸리버, 샤다이의 꿈을 이루다 2

다이나 걸리버의 클래식 첫 경기는 86년 도쿄 1800m 쿄도통신배4세S(G3)(현재는 쿄도통신배3세S) 단승 1.6배의 1번 인기를 달고 출주 결과는 2착과 기록과 1과 3/4마신차를 기록하며 골인! 1분 48.7초로 쿄도통신배 레코드를 갈아치우며 승리를 차지하며 사츠키상 출주권을 얻어 사츠키상에 나가게 된다. 1986년 4월 13일 나카야마 2000m 사츠키상(G1) 1번 인기는 당시 케이세이배3세S(G2, 지금은 케이오배2세S), 아사히배3세S(G1, 지금은 아사히배FS), 야요이상(당시 G3)을 이긴 5전 5승 무패의 말 9번 다이신 후부키 2번 인기는 쿄도통신배(G3)를 우승하며 3연승을 달리고 있던 15번 다이나 걸리버 3번 인기는 4전 2승 야요이상(G3) 4착마 2번 아사히 엠페러 4번 인..

다이나 걸리버, 샤다이의 꿈을 이루다 1

현대 일본 경마를 보는 사람도, 경마를 보지는 않더라도 우마무스메라는 게임을 하다보면 사람들에게 듣게 되는 한 목장이 있다. ‘샤다이 그룹’ 해외에서 종마 노던 테이스트, 리얼 샤다이, 토니 빈, 그리고 선데이 사일런스를 수입해온 후 현재까지도 일본경마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목장이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당시 샤다이 그룹은 지금만큼의 위상은 아니었다. 샤다이의 본격적인 성장은 선데이 사일런스가 일본에 들어온게 1991년부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샤다이 그룹의 창업자 요시다 젠야에게는 어릴 적부터 꿈이 있었다. ‘일본 더비를 제패하고 싶다’ 마주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55년부터 1986년까지 단 한 마리도 더비마를 배출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 1983년 3월 23일, 한 ..